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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프노버딩 콘텐츠

근대 출산의 역사와 비인간적 출산의 시작


메리 몽간의 히프노버딩의 내용입니다.

근대 출산의 역사와 산업화된 병원 출산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축하에서 두려움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 중심적인 지식이 등장하며 출산하는 여성들에 대한 대접은 전 보다 나아졌다. 당시 많은 의료 분야에서 클로로포름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진통 중인 여성에게는 사용되지 않았다. 여성과 출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유럽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진통중인 여성들에게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뉴잉글랜드의 한 성직자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마음에 우러나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믿음이 당시에 팽배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근대적 지식과 관련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 우리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합병증과 그에 따른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떻게 진통을 고통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지나친 공포는 지나친 긴장을 유발하고 긴장이 되면 자궁 경부가 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능하지 못한다. 고통 가운데 살고 고통을 목격한 사람들은 출산에서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하였다.

 

18세기 중반이 돼서야 의사들이 출산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원치 않는 참여였다. 산과학에 몸담게 된 남자의사들에 대한 편견이 아주 강했다. 결과적으로 산과학을 택한 의사들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많았다. 하지만 출산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산모들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로 취급받았다.

 

1800 년대에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출산에서 클로로포름을 맞겠다고 주장한 이후 출산에서 마취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는 이후 수년 동안 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출산이 집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는 출산이 집에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서가 아니라 집에서 마취하는 게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취를 제대로 관리하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망률의 증가를 포함하여 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마취를 원하는 여인들은 집을 떠나 병원으로 가야했다. 남편들은 출산 장면에서 사라지게 되고, 가족들은 자신들만의 출산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출산에 있어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접근법이 시작되었다.

병 원에서 산모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당시 병원의 산부인과 병동은 끔찍할 정도로 더러웠다. 손을 씻지 않아서 생기는 감염이 만연했다. 안전과 좋은 의료 처치를 위해 병원을 찾은 많은 여성들이 보통 “산욕열(childbed fever)"라고 하는 감염으로 죽었다. 병원에서의 높은 모성 및 신생아 사망률은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여전히 출산에 있어서 고통과 죽음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집에서 아이를 낳는 여성들은 훨씬 낮은 합병증이나 사망률을 보였다.

 

1913 년 카네기재단에 의한 연구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병원에서 죽어 가는데 비해 영국의 어촌이나 고지대에서 아이를 낳고 양, 닭과 같은 가축들과 같이 사는 집에서 아이를 갖는 여인들은 거의 죽지 않고 합병증도 없다고 보고했다. 병원에서의 사망은 출산 자체의 위험이나 출산으로 인한 합병증보다 위생의 미비나 병원 내 다른 환자의 질병이 전염되어 생긴 결과였다. 출산 이외의 문제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죽음의 공포가 출산과 연계되었다.

 

이 시기에 산모들이 출산은 끔찍한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들은 출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운이 좋으면 엄청난 고통으로 끝나고 최악의 경우 고통가운데 죽을 수 도 있다고 알고 있었다. 출산이 더 이상 축하의 대상이 아님은 분명해 졌다. 여성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출산은 평생토록 감당해야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한 여인 덕분에 출산 환경이 나아졌다. 그 여인은 나이팅게일이었다. 나이팅게일은 조산사 학교를 다시 설립하고 산부인과 병동에서도 다른 병원과 같은 수준의 위생과 청결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금 모금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이팅게일은 실력 없고 알코올에 찌든 의사들을 출산 현장에서 사라지게 하고 여성들이 친절하게 대우받게 했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이미 마취약이 출산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추의 방향은 관리 부족 상태에서 과잉 처방의 상태로 옮겨졌다. 필요여부를 따져 보지도 않고, 조기에 약물과 마취약을 사용하는 것이 출산 현장의 표준이 되었다. 고통스러운 출산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산모들은 초기 진통이 시작되면 과다한 진통제를 투여 받게 되고 아기 머리가 보일 때쯤이면 일반적인 마취가 행해졌다. 약물투여를 많이 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아이를 산도에서 끄집어내는 출산이 보편화되었다. 진통하는 산모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빨리 출산을 처리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오늘날,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산과 서비스에 종사하는 많은 관계자들과 여성 자신들도 출산에서 고통은 필수라는 신화를 계속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미리 반대의 사건을 예방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의료진에 의지하여 출산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다.

 

인공적인 분만 유도나 분만 촉진 행위들이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의료적인 근거 없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약물은 통증을 유발하고 약물로 인해 생긴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 다른 약물을 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 결과 많은 가족들의 아름다워야 할 출산의 이야기가 사과(apology)와 실망 안 좋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합리화로 전락된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 여러 약물 투여, 열리지 않는 자궁, 제왕절개나 회음절개와 같은 수술, 출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감에 대해서 말한다. 이러한 출산의 상처는 엄마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왜 여성들이 이러한 경험을 가져야하는가? 왜 완벽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여성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왜 수 많은 여성들이 수술로 아기를 빼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40년 전에는 너무 기이한 일로 여겨질 정도로 드물었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은 한 단어로 귀결될 수 있다. “두려움”이다.

 

 

 

엄마의 의도

 

우리의 출산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아이가 경험하는 것이 아이의 삶을 빚어내고

처녀에서 엄마가 되는 순간순간의 경험이 여인을 바꿉니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탄생은 우리 중심에서 본능을 일깨우고 육아를 쉽게 하고 가족을 강하게 만듭니다.

만약에 엄마, 아빠가 임신 순간부터 자신들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지도 몰랐던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킴 윌드너 (Kim Wildner)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_메리몽간 지음 | 정환욱, 심정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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